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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샤프 교회사(사도적 기독교)

거룩한 장소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영이시므로 자신의 전인 우주의 모든 장소에서 예배를 받을 수 있지만, 우리의 본성이 유한하고 감각적인 점과 합해서 예배를 드려야 할 필요성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구별해 놓은 특별한 지역들이나 성소들이 필요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모세경륜과의 관계가가 허용되는 동안에는 주님의 본을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을 자주 찾아갔다. 그러나 그외에도 처음부터 개인 집들에서 모였는데, 특히 성찬과 예찬을 거행할 때는 그렇게 했다. 교회 자체가 오순절에는 보잘것없는 가옥의 다락방에서 세워졌다.

 

초대회심자들로서 유력한 교인들, 이를테면 예루살렘에 살던 요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가이사랴의 고넬료, 빌립보의 루디아, 데살로니가의 야손, 고린도의 유스도,에베소의 브리스길라,골로새의 빌레몬 같은 사람들은 공예배를 위해 자기 집을 흔쾌히 제공했다. 로마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기독교 공동체가 여럿으로 나뉘어 개인 집들에서 모였는데(롬16:5;고전16:19), 그러면서도 회람 서신을 통해 하나의 단위로 존재했다.

 

사도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위한 특별한 건물을 세웠을 가능성은 그들이 전반적으로 가난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박해를 받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대단히 희박하다. 아울러 어느 회당 전체가 새로운 믿음으로 전환한 경우도 의심할 여지 없이 거의 희박했다. 세상의 구주가 구유에서 나시고 승천할 실 때도 그냥 산에서 승천하셨듯이, 그분의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들도 제3세기에 이르도록 거리와 시장과 산과 배와 묘지와 동굴과 광야와 회심자들의 집에서 말씀을 전파했다. 그러나  그 이후 얼마나 화려한 교회당들과 소예배당들이 세계 도처에 건축되었고, 지금도 계속 건축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구주를, 낮아지셨을 때는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그분을 기리고 있는가(눅9:58)!!

 

 

                                               거룩한 시간들 – 주의 날

 

모든 장소와 마찬가지로 모든 날과 시간도 하나님께는 거룩하다. 하나님은 모든 공간과 시간을 채우고 계시므로 모든 곳에서 언제든지 예배를 받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상 생활에 따르는 필연적인 제약들 때문에, 아울러 공예배 본질 때문에 거룩한 시간들을 정해 사용하는 일이 생겼다. 사도 교회는 일반적으로 유대인의 관례를 따르되 미신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믿음과 자유의 정신을 채워 넣었다.

 

1, 따라서 유대인의 매일 기도 시간, 특히 아침과 저녁을 관습으로 지켰고, 그외에도 시간 제약을 받지 않고서 개인의 엄격한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2.주의 날은 공예배일로서 유대인의 안식일을 대체했다. 실재는 남았으나 형식은 바뀌었다. 매주일이 육체와 영혼이 쉬는 날로 제정된 것은 우리의 육체적 . 도덕적  본성에 뿌리를 둔 것으로서, 결혼과 마찬가지로 낙원에서 제정되었으니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막2:27)라는 심오한 말씀에 함축되어 있다.

 

안식일은 그리스도께서 멸하러 오시지 않고 완성하러 오신, 그리고 사람이 어느 한 계명을 어기면 나머지 전체를 어기게 되는 도덕적인 십계명이 들어있다. 동시에 유대교 안식일은 여러 민족적 의식적 제약들로 둘러져 있었다. 그 제약들은 항구적인 것으로 의도된 것은 아니었으나, 점차 본래의 큰 도덕적 목표를 가릴 정도로, 또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도록 만들 정도로 부각되었다. 포로기 이후에 안식일은 바리새인들의 손에 의해 특권과 복보다는 계율적 멍에가 되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기계적인 의식주의에 반대하시고, 안식일이 제정된 참된 정신과 자비의 목적을 회복해 놓으셨다.(마12:1 이하;10 이하; 마가와 누가의 병행 단락; 요 5:8 이하; 6:23; 9:14, 16). 노예적이고 미신적이고 자기의를 내세우는 바리새인의 안식일주의가 갈라디앗 교회에 침투하여 칭의의 조건으로 대두되었을 때, 바울은 그것은 유대교로 후퇴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질책했다(갈 4:10;비교 롬14:5 ; 골2:16)

 

기독교 교회에서는 안식일이 한 주간의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바뀌었다. 특별히 계명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자유로운 정신과 기독교 교회 설립의 바탕을 이루는 위대한 사실들의 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날이 그날이었고, 그 뒤 마리아와 엠마오 제자들과 모인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날도 그날이었다. 성령을 부어 주시고 교회를 세우신 날도 그날이었으며, 사랑하는 그 제자에게 장래의 비밀들을 계시해 주신 날도 바로 그날이었다. 따라서 주간의 첫날은 이미 사도 시대에 ‘주의 날’로 존귀하게 일컬어졌다.

 

그날에 바울은 드로아에서 제자들을 만나 늦은 밤까지 강론했다. 갈라디아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힘 닿는 대로 구제  연보를 하라고-<의심할  여지 없이 공예배 시간에>-당부한  것도 그날이었다. 따라서 신약성경만 보더라도 일요일을 예배일로, 그리고 구속 사역을 완수케 한 부활을 특별히 기념하는 날로 지켰다는 것을 알 수 잇다(요20:19, 26; 행20:7; 고전 16:2; 계1:10).

 

제2세기에 교회가 일요일을 보편적으로 한결같이 안식일로 지켰다는 것은 그것이 사도 교회의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로써만 비로소 설명할 수 있다. 그 관습은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전에는 세속법으로 아무런 뒷받침도 받지 못했다는 점과,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 지위가 낮앗고 이교도 주인과 고용주에 종속되어 있었던 것을 감안 할 때 틀림없이 많은 불편함이 따랐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로써 일요일은 쉽고 자연스러운 전환에 의해서 기독교 안식일 혹은 주간의 휴일이 되면서, 유대교 안식일의 예표적 의미에 단번에 대답을 해주었고, 그 자체가 다시 하늘의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릴 영원한 안식의 예표가 되었다(참조, 히4:1-11; 계4:13)

 

복음 시대에 안식일은 이레 중 하루로 의미가 축소되지 않고 모든 시간 모든 노동을 주께 받치는 것을 상정하는, 더 중요한 날로 격상된다. 이제는 안식일이 계율적이고 의식적인 속박이 아니라, 귀중한 은혜의 선물이요, 특권이요, 안식이 없는 세상 중에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거룩한 안식이요, 하나님과 성도들과 함께 사귐을 갖는 영적 쇄신의 날이요, 영원히 끝나지 않을 하늘의 안식일에 대한 예기이자 담보이다.

 

이 날을 올바로 지키면 – <이 점에서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와 미국의 교회들이 유럽의 대륙의 교회들 보다 뛰어났고, 그로써 헤아릴 수 없는 유익을 얻었다> –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온전한 귄징의 학교이자 은혜의 방도가 되고, 공동체의 도덕과 신앙의 보루가 되고, 불신을 막아주는 요새가 되고, 교회와 국가와 가정에 막대한 복의 근원이 된다. 교회와 성경 다음으로 주의 날이 기독교 사회의 주된 기둥이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는 기독교 일요일 외에도 옛 부터 지켜온 안식일도 지켰다. 그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유대인의 이 관습이 에비온파와 나사렛파에서만 존속했다. 일요일이 구주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자 감사와 기쁨의 날로 지켜졌듯이, 적어도 2세기 초반에는 금요일이 기도와 금식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참회의 날로 지켜지게 되었다.

 

3.연례 절기들, 사도들의 저작에는 연례 절기에 대한 명령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언급되어 있지 않다. 십계명에  절기들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절기들을 지켜셨고, 그중에서 유월절과 오순절은 유대인의 안식일이 기독교 안식일로 쉽게 전환되었던 것처럼 기독교의 절기로 쉽게 전환되었다. 제2세기의 보편적이고 일관된 관습에 비추어 볼 때 서신서들에 실린 몇몇 암시들(고전 5:7, 8; 16:8; 행 18:21;20:16)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절기들이 사도 시대부터 시작 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시고 교회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골똘히 생각한 대상이엇다. 이 생각이 매주 일요일은 안식일로 지키는 것으로 표출되었듯이, 구약의 두 가지 큰 전형적인 절기가 기독교의 부활절과 성령강림절로 전환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제2세기에 벌어졌던 유월절 논쟁들은 부활 사실 자체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부활절 날짜에  관련된 것이었으며, 서머나의 폴리카르푸스와 로마의 아니케투스는 당시 교회의 상이한 관습에 잇었던 중요하지 않은 차이로 돌렸다

 

그 밖의 구약절기들의 관해서 신약성경은 아주 희미한 흔적조차 갖고 있지않다. 성탄절은 제4세기에 교회력 사상이 자연스럽게 발전하면서 일종의 연대기적 신조로서 대두되었다. 니케아 시대와 그 이후 성인들의 대한 숭배가 확산되면서 점차 마리아, 사도들, 성인들, 순교자들의 축제들이 생겼고, 마침내는 거의 모든 날이 처음에는 그냥 거룩한 날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정규 축일이 되었다. 성인들이 주님의 빛을 가렸듯이 성인들의 축일이 주의 날의 빛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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