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바빙크의 조나단 에즈워즈에 대한 평가
뉴잉글랜드에서 첫번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신학자는 조나단 에드워즈이다(1703-58). 그는 깊이있는 형이상학적 정신력과 깊은 경건성을 동반한 인물이었다. 웨슬리가 미국에 오기 전인 1734년에 이미 노스햄프턴의 그의 회중들에게서 주목할만한 부흥이 일어났다. 그리고 후에 그의 친구인 휫필드와 함께 그는 유사한 부흥을 이끌고 지켜내었다. 신학적으로 그는 특별히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반대하였는데 이 아르미니우스주의는 다니엘 휘트비와 존 테일러의 저작들을 통해서 뉴잉글랜드로 유입되었다. 그는 그의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사변에 의해서 칼빈주의를 강화하고자 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자연적인 무능력과 윤리적인 무능력의 구분-이 구분은 이미 존 카메론에게서 발생하였다.-과 의지의 자유, 원죄, 그리고 덕에 관한 그의 독특한 이론에 의하여 칼빈주의를 약화시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에드워즈주의자, 신 신학자(New Theology men), 또는 새빛파(New Lights)들의 아버지가 된다. 이들은 칼빈주의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 교리를 고수하였으나 프랑스의 소무르 신학자들이 하였던 것처럼 이것을 원죄의 거부, 속죄의 보편성과 혼합하였다.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1권 60절>에서